정말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임영웅이 부른 '걷고 싶다"에 대한 반응과 화제가 만발해서 이와 관련된 글을 올려봅니다. 저도 처음 미스트롯부터 미스터트롯까지 반은 미쳐서 꼭 시청하는 광팬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현대사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인류의 전쟁대상인 코로나 전염병 사태가 가져온 아이러니입니다. 코로나로 조용필님 공연도 못보고 팬클럽 모임도 없고 지인이나 단체 모임도 못하고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는 요즈음 답답함과 우울함을 달랠 수 있는게 어쩌면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 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국민들의 시청율도 그 때문이기도 하구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는 임영웅이 부른 '걷고 싶다'를 사랑의 콜센타에서 처음 들었을 때에 아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조용필님이 부른 원곡과 전혀 다른 분위기나 색깔로 또 다른 감명과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임영웅의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그 특유의 시대적 분위기나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같은 가수라도 노래하는 곡에 따라서 생각이나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임영웅이 부른 노래 '걷고 싶다'에 대한 유튜브 댓글 반응을 보면 호평 일색입니다. 이를 통해 조용필님의 원곡도 일부러 함께 듣게 되었다는 분들, 원곡이 조용필님의 곡이라는 사실을 새롭 게 알게 된 젊은 세대들, 조용필님의 팬이면서 처음 알게 된 곡이라는 분들 등 등.. 임영웅의 노래에 대한 호평은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젊은 층이 주류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이유는 임영웅만의 특유의 창법과 감성적인 목소리 때문에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느낌의 노래가 당연히 중년층은 물론 특히 젊은 층에게 다가왔을 것은 뻔한 것입니다. 우리 팬클럽 세대나 그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당연히 어렵게 살아온 시대적 배경이나 삶의 무게 등으로 당연히 조용필님의 애절하면서도 절절한 목소리와 창법이 더 어울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댓글 반응들을 많이 분석해보니 임영웅을 좋아하는 팬들도 조용필님의 노래도 듣고 절절한 슬픔을 노래한 깊이가 남다르다는 반응들이 많고, 가끔은 너무 슬퍼서 계속 못 듣겠다는 분들도 있고, 분위기가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들이 전부 좋다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특유의 목소리나 창법은 명곡이라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 존중해 줘야할 의견이라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영웅으로 인해서 조용필님의 가려진 명곡 '걷고 싶다'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으므로 조용필님의 팬의 한사람으로서 아주 기쁘고 고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팬들사이에서만 명곡으로 존재하다가 박정현이 그 노래를 부른 이후로 전 국민에게 알려졌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명곡이라도 국민들이 모르고 지나가면 이 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봅니다. 어떤 계기가 되었든 흑묘백묘 따질 사항이 아니라 조용필님의 숨은 명곡이 전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사실 보다 중요한 명제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19집 발매시 'Bounce'와 'Hello'가 크게 인기를 끄는 바람에 '걷고 싶다'가 가려진 부분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9집 대표곡 2곡이 전혀 새로운 통통튀는 음악과 창법으로 젊은 층까지 사로 잡았듯 이 만약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와 유사한 창법이나 조금 부드럽고 은은한 창법을 구사했다면 그 당시에 혹시 젊은 층에게도 이 노래까지도 어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이, 욕심아닌 욕심이 드는 건 팬으로서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조용필님 공연장에서 '걷고 싶다' 를 자주 듣게 되기를 희망하며, 제가 젊은 시절에는 애절한 분위 기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원곡을 너무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공연장에서 듣는 세련된 편곡의 경쾌 한 곡이 더 좋게 느껴졌고, 같은 곡도 다른 스타일의 조용필님 창법도 전부 저에게는 다 만족하고 좋게 느 껴졌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걷고 싶다'의 곡도 원곡 스타일도 듣고 싶고 다른 스타일로도 듣고 싶은 팬입니다. 조용필님은 어느 기준에 맞춰 창법과 스타일을 추구하시는 것 뿐이지 다른 어떤 창법과 스타일로도 전부 가능하신 전천후 뮤지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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